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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끄적끄적

개미

연필을 커터칼로 돌려가며 깎다가 삐끗했다. 왼쪽 검지 끝이 8mm 가량 얕게 베었다. 피가 스믈스믈 새어 나오려다 이내 멈췄지만 그래도 아린 듯 했다. 시팔. 짜증에 소독약을 묻혀 연신 닦아 냈다. 데일밴드를 두어번 돌려 감으니 손가락 끝이 저릿하다.

바닥에 개미가 지나간다.

개미를 잡았다. 작았다. 약하다. 왼손에 난 생체기보다도 작다. 부러진 연필심보다 단단하지 못하다. 개미가 여섯다리를 규칙없이 버둥거렸다. 그 살고자 하는 욕구가, 의지가 일순간 나보다 나아보였다. 

지체없이 잘록하게 들어간 한 마디를 오른손 검지 손톱 끝으로 눌렀다. '툭' 소리하나 내지 못하고 그대로 몸이 갈라졌다. 신체의 삼분의 일을 잃었는데도 다리를 아래 우로 휘저으며 빠르게 몸부림 쳤다. 남은 마디, 머리와 몸통 사이를 감흥없이 그저 지그시 눌렀다. 끊어졌다. 죄책감이 들어설 겨를 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다른 개미를 같은 손으로 잡았다. 맹목적인 행동에 저항은 무의미했다. 그대로 검지 끝에 힘을 주었다. 물이 나왔다. 짓눌린 그것을 손에서 털어냈다. 개미는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없이 곧장 쳐박혔다. 

또 다른 개미를 잡았다. 죽이는 건 의미가 있지 않았다. 뒷다리 두개를 떼어냈다. 내 눈을 뜨고 감는 것 보다 간단했다. 앞다리 하나를 더 떼어낸 후 그냥 버렸다. 개미가 휘우듬히 기어갔다. 검색해보니 완전변태 곤충은 재생되지 않는다고 했다. 저렇게 사는 게 나을까. 불쌍한 것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 에이 그냥 두자. 시시한 고민이 지나간다.

나는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동안 두 명을 살해했고, 한 명의 신체를 파괴했다. 토막나고 터진 두 구의 사체와, 널부러진 다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손끝이 가려웠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청소기로 잔해를 빨아당겼다. '위이잉' 찌르는 듯한 소리가 온 신경을 강타했다. 미동도 없던 인상이 일순간 빠르게 구겨졌다. 

손과 얼굴을 비누로 닦았다. 물이 스며든 밴드 속 상처가 쓰라려 오른손으로 검지를 꽉 쥐었다. 우연찮게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걸리는 것 없이 거슬렸다. 무던한 손톱만 괜스레 한 번 더 깎았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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